|
완연한 봄이 왔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안전운전 하시길 바랍니다.
1년전 XG를 얻고 이제야 후기를 올립니다.
독백체로 서술하오니 양해 바랍니다.
相見禮...
내가 회사 대리였던 2000년도, 당시 대표이사의 차가 그랜져 XG Q25 였다.
그 녀석을 간간히 몰아 보며 "고급세단은 이런 거구나" 라고 감탄을 하곤 했었다.
그때의 아련한 느낌은 여전히 뇌리에 고스란히 남아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줄 알았다.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1년전인 2015년 05월 06일...
녀석과 처음 만났다.
2004년에 진주색 피부와 뉴그랜져 XG R25라는 이름을 받아 태어나
만으로 열 한살인 이 녀석은 그 동안 고작 47,000km 밖에 달리지 않은 싱싱한 녀석이었다.
나와 함께 할 녀석인지라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강남 부자집 사모님의 수발을 들어서 인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내,외관 모두 용모가 수려 했다.
마치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부자집 막내 아들을 보는 듯....
하지만, 점잖고 예의바른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녀석을 데려오기 위한 와이프와의 짧지 않은 신경전은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라면 어떤 내용일지
다들 공감하시리라 믿고 생략한다.
새 차도 아니고 저렴한 중고차 한 대 장만하면서 구걸 아닌 구걸을 하며,
남자에게 차라는 것이 여자에게 명품백이나 보석과 얼마나 흡사한지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힘이 좀 들었다는 것만 말씀드린다.
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는 밤에 이루어 진다더니...
偶然, 必然, 因緣...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연 또는 필연으로,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인연이 만들어지곤 한다.
계약을 위해 녀석의 등록증을 보는 순간... 무언가에 얻어 맞은 듯 띵~ 했다.
녀석의 최초 등록일이 2004년 05월 07일...
새로운 등록일이 2015년 05월 07일...
녀석은 태어나면서 나와 같이 할 운명이었나?
사소한 기계적 날짜의 우연에 두툼한 감성적 필연을 덧쒸워 녀석과의 인연에 저렴한 명분을 보탠다.
그렇게 녀석은 내 새로운 동무가 되기로 했다.
花無百日紅...
녀석을 집에 데려와 찬찬히 살핀다.
양주 마당에서 보이지 않던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세상 만물이 세월과 친구인 것을~
세월의 친구들을 몇가지만 열거해 보면...
얼마나 운행을 안했는지 다 낡아 삭아버린 윈도우 브러쉬 블레이드...
괜찮다. 차가 너무 좋으니 사자카에서도 거기 까지는 안 봤을 꺼다.
비 오는 날 지렁이 한마리가 지나간 듯, 대시보드 우드그레인의 긁힘 자국...
괜찮다. 애써 안보면 된다.
한 여름 삼복더위에 헉헉 거리는 누렁이 혓바닥 마냥 쭉~ 빠진 채 잘 들어가지 않는 운전석 안전벨트...
괜찮다. 녀석은 열 한살이다. 살짝만 넣어주면 된다.
무시로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는 룸미러...
괜찮다. 일으키면 세우면 그만이다.
뒤에서 보니 센터가 맞지 않는 사제 후방감지기...
괜찮다. 알람소리 하나는 크고 정확하다.
열 한살 나이에 이 정도의 흔적은 그 동안 수고한 훈장 정도로 인정하자.
나 또한 이 녀석과 매 한가지 아니겠는가...
그리고 위에 열거한 내용들은 이 녀석의 성능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감사해 하고 있다.
名不虛傳...
녀석은 태어나 47,000km 밖에 달리지 않았다.
심장을 비롯한 모든 장기가 싱싱하다.
내 명령에 튀어 나가며 으르렁 거리는 특유의 울음 소리가 힘차다.
정속에서 편안하게 내 몸을 받아 주는 소파드리븐의 안락한 느낌이 좋다.
하물며 한 귀퉁이에 다소곳이 앉아 쉬고 있는 모습도 단정하다.
마치 선하고 우직스럽고 잘생긴 리트리버를 보는 듯 하다.
지금이 녀석이 태어난 시대라면 어디에 내놔도 먹어줄 만 하지 않겠는가.
세월이 흘러 이 녀석의 동생뻘 되는 놈들도 덩치가 커지고 힘도 좋아졌다지만,
내게는 이 녀석도 충분하다. 아니 과분하다.
初心不忘
녀석과 함께 한 지 이제 1년...
달리라고 명령하면 으르렁 거리며 달려 나가고, 멈추라면 지체 없이 정확히 멈추고,
씻겨주면 뽀얀 모습을 보여준다.
변덕스런 마음에 언제 변심하여 또 다른 녀석을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믿고 데려왔으니 같이 동행하는 날까지 보듬어야겠다.
---------- 이 상 ----------
| 
